17세기 바로크 양식이 꽃핀 배경에는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분쟁(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 )의 영향이다. 구교와 신교의 대립은 가톨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개축공사가 발단이 되었다.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레오 10세는 막대한 재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했다. 대사의 조건으로 헌금을 제시하는 문제는 15~16세기 독일 지방에서 논란이 되었다. 당시 교황청에서는 15세기초 교회분열을 마감하고 다시 로마로 교황청이 귀환한 형편에 로마시가 몰락해 있었다. 게다가 로마 재건 사업과 성 베드로 대성당 축조, 교황령의 전쟁 비용 등으로 재정이 어려워졌다.이러한 조건의 대사는 루터의 고향인 독일에서 종교 개혁과 결부되어 유명해졌는데 한 사례로 1515년 당시 신성 로마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