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 2

러블리 리리 2024. 6. 30. 19:29

렘브란트는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리라는 것을 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성경의 이야기를 묘사한 렘브란트의 그림이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보인다. 이는 천부적인 재능에서 비롯한다.

신앙심이 깊은 신교 렘브란트는 성경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서 읽어 습득했다.

<무자비한 하인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한 소묘이다. 이 소묘는 그림자체로 내용이 설명된다.

정산을 하는 날인지 커다란 장부를 살펴보는 남자와 함께 주인이 앉아 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주머니 속을 뒤지는 것 같지만 그 모습으로 보아 빚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분주한 회계사와 위엄 있는 주인과 죄송스러워하는 하인의 상호 관계가 몇 개 안 되는 선으로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렘브란트는 이 장면의 내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제스처나 동작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는 연극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다윗왕과 압살룸의 화해>도 역시 성경 이야기를 묘사한 유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묘사된 것은 다윗왕이 그의 사악한 아들 압살룸을 용서해 주는 장면인데, 이전에는 다루어진 적 이 없는 주제이다.

 

렘브란트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성지의 왕들과 족장들을 마음의 눈으로 그려보며 번화한 암스테르담의 항구에서 본 동방 사람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윗 왕에게 큰 터번을 슨 터키사람 같은 옷을 입히고 압살룸에게는 오리엔트의 환도를 씌었다. 그의 화가다운 눈은 이러한 동방 사람들의 화려한 의상에 매료되었다. 오리엔트의 의상은 그에게 값비싼 천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과 금은보석의 공채를 묘사항 기회를 부여했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루벤스나 벨라스케스 못지않게 번쩍이는 질감의 효과를 아주 실감 나게 묘사하는 탁월한 솜씨를 지녔다. 렘브란트는 다른 이들보다 밝은 색을 훨씬 더 적게 사용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밝고 현란한 색채와의 대비가 있어 보다 강하고 힘차게 돋보이게 만든다. 그 결과 그의 몇몇 작품에 나타나는 빛은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그러나 그는 명암의 마술적인 효과를 그 자체를 위해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항상 한 장면의 극적인 효과를 고조시키지 위한 것이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완자가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용서를 비는 자세와 그것을 조용하고 슬픈 살롬의 얼굴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그의 감정은 그림에서 느껴진다.

 

<설교하는 그리스도>는 렘브란트의 에칭 기법 작품 중의 하나인데 이것 또한 성경 이야기 묘사이다. 

뒤러와 같이 렘브란트도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판화가로서도 역시 위대한 거장이었다. 그가 사용한 기술은 이제 목판화나 뷔랭으로 직접 긁어서 파는 동판화가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신속하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에칭이라는 기법은 동판의 표면에 밀랍으로 덮고 그 위에 바늘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 바늘로 긁은 자리는 밀랍이 제거되어 동판의 표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다음에 동판을 산성 용액 속에 집어넣으면 밀랍이 벗겨진 부분은 산에 부식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온전히 남아있다. 그런 다음 인그레이빙과 동일한 방법으로 인쇄잉크를 칠한 다음 찍어내면 된다. 에칭을 인그레이빙과 구볗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격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뷔랭에 의한 힘들고 느림 작업으로 생겨나는 선과 바늘에 의해 자유롭고 용이하게 그려진 에칭의 선은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서로 다르다.

 

예수의 뒤에 서 있는 뚱뚱한 사람은 바리새파 인들에 대한 예수의 공격으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탈리아 미술의 아름다운 인물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볼 때 때때로 충격을 받곤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추한 것까지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설교를 하고 있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기위해 그의 주위에 모여 있다. 이번에는 렘브란트 자신이 살고 있던 도시 주변에서 모델을 택했다. 렘브란트는 오랫동안 암스테르담의 유태인 거리에서 살았고 성경을 설명한 그림을 도입하기 위해 유태인들의 용모와 의상을 연구했다. 이 그림에서 유태인들은 옹기종기 서 있거나 앉아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혹은 매혹되기도 하고 혹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당대의 다른 미술가들 처럼 렘브란트도 카라바조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렘브란트가 카라바조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의 한 화가를 통해서였다. 카라바조와 마찬가지로 렘브란트 역시 조화와 아름다움보다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 그리스도는 가난하고 배고프고 슬픈 사람들을 향해 설교를 했다. 가난과 굶주림과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물론 '미'라는 것은 우리는 주관이다.

렘브란트의 자유로운 제작 태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가 인물을 배치하는데 얼마나 많은 예술적 지혜와 기술을 사용했는지 잊게 해 준다. 그의 존재는 네덜란드 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당시의 어떤 화가도 감히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교의 나라 네덜란드에 그들 나름의 업적으로 해서 연구하고 감상할 가치가 있는 화가들이 많이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유쾌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북유럽 미술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이런 전농은 중세의 세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전통의 흐름을 완성시킨 17세기의 화가는 얀 반 호이안의 사위인 얀 스텐이었다. 당시의 다른 많은 미술가들처럼 스텐도 그림만 가지고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여관을 운영하였다. 그는 여관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 및 인물유형을 콜렉팅 할 기회를 얻었다. 평민들의 유쾌한 생활의 한 장면인 세례를 축하하는 장면인데 편안한 방구석에 ㅏ기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가 있고 친구와 친척들이 모여 아기를 안고 있는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다. 이 화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장면에 혼합한 실력이 훌륭하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풍경화 전문인 야콥 반 로이스달이었다.

흔히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이라 하면 얀 스텐의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유쾌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연상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정신에 가까운 분위기를 표현한 다른 화가들이 있었다. 그 로이스달은 얀 스텐과 동년배로 위대한 네덜란드 미술가들은 제2세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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