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의 새로운 기술은 현실의 환상을 더욱 가중시켰다. 도나텔로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성인의 머리를 방 안으로 가져왔을 때의 정경을 어떠했을까' 그는 최선을 하해 그런 사건이 일어났음직한 건물로 고전적인 궁전을 그렸고 배경에 있는 인물들을 위해 로마 시대 유형의 인물들을 선택했다. 그 다시 도나텔로는 브루넬레스키와 마찬가지로 미술을 재생시키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로마의 유적들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로마 미술에 관한 이런 연구가 미술의 재생, 즉 '르네상스'를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브루넬레스키 주변의 미술가들은 미술의 부활을 너무나 열렬히 갈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새로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연과 과학과 고대의 유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과학과 고전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은 얼마동안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전유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과거 어떤것보다 더 자연에 충실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는 정열은 북쪽에 사는 미술가들도 영감을 주었다.
피렌체에서 도나텔로의 세대가 국제 고딕양식의 섬세함과 세련미에 싫증을 느끼고 보다 힘있고 장중한 인물상을 창조하기를 갈망했던 것과 같이 알프스 북쪽에서도 한 조각가가 그의 선배들의 섬세한 작품보다 실감 나고 보다 솔직한 미술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클라우스 슬뤼테르라는 조각가는 부유하고 번창하는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 디종에서 1380년경부터 1405년경까지 일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중 순례지에서 샘을 표시하는 커다란 십자가 밑부분을 이루는 예언자 군상이 있다. 그 예언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예언했는데 각각 손에 그런 예언이 새겨진 커다란 책이나 두루마리를 들고 앞으로 닥쳐올 비극물 묵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 인물상들은 이미 고딕 성당 양편에 서 있는 엄숙하고 딱딱한 인물상이 아니다. 이들은 도나텔로 <성 게오르기우스>와 마찬기지로 옛날 작품과는 다르게 터번을 머리에 감고 있는 사람이 다니엘이고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이 이사야이다. 실물보다 크고 아직도 황금색으로 빛나며 우리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조각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막 역할을 하려는 중세 종교극에 나오는 인상적인 등장인물들 같다. 그러나 이처럼 사실감과 함께 의상 등 기품 있는 자태를 한 이 육중한 인물상들을 창조한 슬뤼테르의 예술적 감각은 놀랍다.
북유럽에서 사실성의 정복을 최종적으로 완수한 사람은 조각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것을 표현한다고 느껴지는 혁명적인 창의성을 보인 사람은 화가 얀 반 에이크였다. 슬뤼테르와 마찬가지로 그는 부르고뉴 공국의 궁전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 현재의 벨기에로 옛날에는 네덜란드에 속해 있던 지방에서 일을 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헨트 시에 있는 여러 장면이 그려진 거대한 제단화이다. 이 작품은 얀보다는 덜 알려진 그의 형 히버트가 시작해서 1432년 얀이 완성했다고 한다. 1432년이면 마사초와 도나텔로의 걸작이 완성된 그 무렵이다.
피렌체에 있는 마사초의 프레스코와 멀리 플라드르의 한 교회를 위해 그려진 이 제단화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 많은 유사점이 있다. 둘다 양쪽 아래 기도하는 모습의 신앙심 두터운 헌납자와 그 안내를 그려 넣고 커다란 상징적 이미지에 초점이 있다. 마사초의 프레스코에서는 성삼위 일체의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고 제단화에서는 예수를 상징하는 양에의 경배라는 신비스러운 광경을 중앙에 배치했다. 주로 요한 계시록의 한 구절에 기초하여 구성되었다. 그 뒤 나는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낳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 옥좌와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라고 쓰인 것으로 교회에서 모든 성인들의 축제와 관련된 것인데, 그 그림에서는 더 많은 암시를 담고 있다. 그 위로 하느님 아버지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마사초의 묘사만큼이나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마치 교황처럼 눈부신 옥좌에 앉아 있으며 그 양 옆으로 예수를 최초로 하느님의 양이라 불렀던 세례자 요한과 성모가 앉아 있다.
많은 장면들을 담고 있는 제단화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축제날이면 펼쳐져 그 빛나는 색채를 드러낼 수 있었고, 주간에는 접혀져 다소 칙칙한 외관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조토가 아레나 예배당에 선과 악에 대한 형상들을 그려놓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례자 요한과 복음서 저자 요한이 입상의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 위로 수태고지의 순간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반 에이크의 새로운 미술 개념을 무엇보다도 놀랍도록 보여주는 부분은 양 날개 부분의 안쪽에 그려진 타락 이후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다. 성경에는 선악과를 먹은 뒤에 그들은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았다고 적혀있다. 그들은 손에 무화과 잎사귀에도 불구하고 정멸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이다. 이점에서 반 에이크는 그리스와 로마의 무슬 전통을 결코 완전히 버리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초기 르네상스 대가들과 진정으로 대치된다. 고대 미술가들은 밀로의 비너스나 아폴론 벨베데레에서 볼 수 있듯 인물의 형상을 이상화했다. 반 에이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벌거벗은 모델들을 그의 앞에 세우고 후세들이 그의 지독한 정직성으로 인해 충격을 받게 될 정도로 충실하게 그렸다. 그가 심미안을 지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도 분명 이젠 세대에는 월튼 두폭화를 그린 대각가 그랬듯 하늘의 영광을 불러일으키기를 즐겼다. 그러나 그가 음악을 들려주는 천사들이 입은 진귀한 비단옷의 광택과 그림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보석의 광채를 연구하며 그릴 때의 끈기와 숙달된 솜씨에서 다시 한번 그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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