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20

브루넬레스키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술의 영역에 있어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으로 그 뒤 수백 년간 미술을 지배했던 원근법의 발견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단축법을 이해했던 그리스 미술가들이나 공간의 깊이를 능숙하게 표현했던 헬레니즘 미술가들조차도 물체가 뒤로 물러갈수록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그 크기가 작아진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고전기의 미술가들 중에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길이 지평선 상의 한 점으로 사라지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미술가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을 제공해 준 사람이 바로 브루넬레스키였다. 이것이 그의 화가 친구들에게 불러일으킨 흥분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러한 수학적인 법칙에 근거하여 그려진 최초의 그림 중 하나는 마사초 이다...

미술사 2024.06.19

15세기

현실성의 정복, 르네상스라는 말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이탈리아에서 확고한 기반을 가지게 된 것은 조토시대 이후의 일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시인이나 화가를 칭찬하고 싶을 때는 그의 작품이 고대의 것만큼 훌륭하다고 말했다. 조토는 이런 식으로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유도해 낸 거장으로 칭송되었다. 즉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미술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저술가들이 칭송했던 고대의 유명한 거장들의 걸작만큼 훌륭하다는 의미에서 이런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이탈리아에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 인들은 먼 옛날에는 로마를 수도로 한 자신들의 나라가 문명 세게의 중심이었는데, 고트 족과 반달 족 같은 게르만 종족이 침입해 와서 로..

미술사 2024.06.19

14세기 귀족과 시민

14세기 취향은 장대한 것보다는 세련된 것을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의 건축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국에서는 소위 '초기 영국양식'이라 알려진 초기 대성당들의 순수한 고딕 양식과 이런 형식들이 발전하여 그 후에 생긴 소위'장식적 양식'이라고 알려진 것으로 구분된다. 그 명칭 자체가 취향의 변화를 말해준다. 14세기의 고딕 양식 건축가들은 벌써 초기 성당의 분명하고 장엄한 외관에만 만족하지 않고 장식과 복잡한 트레이서리를 통해서 그들의 솜씨를 과시하고자 했다. 엑서터 대성당의 서쪽 창문이 이 양식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교회를 짓는 일이 더 이상 건축가들의 주된 과업은 아니었다. 나날이 발전하고 번창하는 도시에서는 시청 청사라든가 조합 사무실, 대학, 궁전, 다리와 성문 등 과 ..

미술사 2024.06.19

13세기 교회

아를 성당을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미술가는 성인들의 상을 건문의 구조에 딱 들어맞는 단단한 기둥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샤르트르 대성당의 북쪽식의 미술가는 성상들을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이 묘사했다. 그 성상들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그들이 두르고 있는 옷주름의 흐림도 그 밑에 살아 있는 육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암시해주고 있다. 조각상들은 성인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분명하게 표시학 ㅗ있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것이 누구의 상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앞에 세우고 있는 늙은 사람이 아브라함임을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다. 또한 모세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십계명이 새겨진 명판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하는 ..

미술사 2024.06.18

13세기 : 교회의 승리

미술가들이 교회에 궁륭천장을 만들어 새롭고 장엄한 방식으로 그들의 조각상을 배치하는 데 성공하자마자 또 다른 참신한 이념이 노르만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을 볼품없는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새로운 이념은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딕 양식의 원리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것을 단지 기술적인 혁신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결과는 그 이상의 것이었따. 서로 교차하는 아치를 이용하여 교회의 둥근 천장을 만드는 방법은 노르만 건축가들이 꿈꾸었던 것 이상으로 일관성 있고보다 훙륭한 건축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만일 기둥들이 또 다른 석조로 메워져 있는 궁륭의 아치를 지탱할 수 있다면 기둥들 사이의 육중한 벽들은 모두 불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건물 전체를 떠받..

미술사 2024.06.18

12세기

연대는 역사라는 태피스트리를 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못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1066년이라는 연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점으로 미술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편리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영국에는 색슨 시대의 건물등 중에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유럽에도 그 시기의 교회가 잔존하는 예는 거의 드물다. 그러나 영국에 상륙한 노르만 인들은 노르망디 및 그 이외의 지방에서 그들 세대 중에 형태를 갖추었던 발전된 건축 양식을 들여왔다. 영국의 새로운 영주가 된 사제들과 귀족들은 수도원과 교회당을 건립해서 그들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건물들은 세운 양식은 영국에서는 노르만 양식으로, 유럽 대륙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식은 노르만 침략 이후 백 년..

미술사 2024.06.13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 유럽

초기 기독교 시대를 위이은시대, 즉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암흑시대라는 명예스럽지 않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이 시기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민족의 대이동과 전쟁, 봉기로 점철된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암흑 상태에 빠져서 그들을 인도할만한 지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또 한편으로는 고대 세계의 몰락 이후 유럽의 제국들이 대략 형태를 갖추고 생겨나기 이전의 혼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기를 명확하게 한계 지을 수는 없으나 논의상 대략 500년 경 보트 1000년경까지 계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상 500년이라면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

미술사 2024.06.12

2세기에서 13세기까지 이슬람과 중국 미술

7세기와 8세기에 그 이전 시대의 모든 것을 다 휩쓸어버리고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정복한 중동의 종교인 이슬람 교는 우상을 만드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엄격했다. 인간의 형상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동양의 장인들은 대신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문양이나 형태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였다. 아라베스크라고 알려진 매우 정교한 레이스와 같은 장식을 창조했다. 회교권 밖에서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중동의 양탄자를 통해 신비한 문양들에 친숙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교한 디자인과 풍부한 색채의 배합설계를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어쩌면 마호메트의 덕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현실 세계의 사물로부터 선과 색채라는 환상의 세계로 미술가들의 마음을 돌렸다. 후기의 몇몇 회교 종파들은 형상..

미술사 2024.06.12

전쟁과 헬레니즘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그리스의 미의식은 ;헬레니즘'시대를 맞이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도시국가들이 극심한 혼란을 거치면서 그리스의 주도권은 북쪽의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이동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 대제국은 불열했지만 동방 원정을 계기로 그리스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처럼 그리스 문화권이 순식간에 확대되면서 그리스 고유의 가치관을 반영한 작품 외에도 다양한 정서를 표현한 예술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지배한 오리엔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함으로 미술양식도 변했다. 구체적으로 그리..

미술사 2024.06.10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 교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이 알몸인 이유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했던 신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유일신과 달리 초인적이면서도 기쁨, 분노, 그리고 애증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개성이 풍부한 존재였다. 인간의 몸은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며 아름다운 인간의 유체가 신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곧 선함이라 여겨져 남자도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덕을 쌓는 일이고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수려한 외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다.- 기원전 6세기말 이후 아테네에서 지혜의 여신이자 아테네 시의 수호신 아테나를 기리는 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미남선발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미남대회에 시니어 부문도 있었다)또한 남성의 육체미를 높이 평가한 배경으로 그리스 남자에게 부여된 병역의 의무를 ..

미술사 202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