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13세기 : 교회의 승리

러블리 리리 2024. 6. 18. 16:24

미술가들이 교회에 궁륭천장을 만들어 새롭고 장엄한 방식으로 그들의 조각상을 배치하는 데 성공하자마자 또 다른 참신한 이념이 노르만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을 볼품없는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새로운 이념은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딕 양식의 원리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것을 단지 기술적인 혁신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결과는 그 이상의 것이었따. 서로 교차하는 아치를 이용하여 교회의 둥근 천장을 만드는 방법은 노르만 건축가들이 꿈꾸었던 것 이상으로 일관성 있고보다 훙륭한 건축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만일 기둥들이 또 다른 석조로 메워져 있는 궁륭의 아치를 지탱할 수 있다면 기둥들 사이의 육중한 벽들은 모두 불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일종의 돌의 골조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가느다란 기둥과 좁다란 늑재 정도였다. 그 골조가 주저앉을 위험이 없는 한, 그 사이에 있는 것들을 다 없애도 상관없었다. 육중한 돌로 벽을 쌓을 필요가 없어지고 그 대신 큰 창문을 낼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온실을 짓는 것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교회를 짓는 것이 건축가들의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강철로 만든 문틀과 철로 만든 대들보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석재로 대치했고 거기에 따른 대단히 조심스러운 계산이 필요했다. 만약에 그러한 것들이 정확하다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교회를 짓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돌과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어었다.  이것이 바로 12세기 후반 북부 프랑스에서 발전된 고딕 식 대성단 건축의 중심 원리였다.

물론 '늑재'를 서로 교차해서 사용하는 원리만 가지고는 이 같은 혁명적인 양식의 고딕 건축을 세우기에는 불충분했다. 이러한 기적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기술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로마네스크 식의 둥근 아치들은 고딕 건축가들의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기둥 사이를 반원형 아치를 가지고 메울 경우 그것을 해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궁륭 천장은 항상 일정한 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높지도 더 낮지도 않다. 만일 그 높이를 더 올리고 싶다면 아치의 경사를 더 가파르게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 최선의 방법은 둥근 아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활 모양의 늑재를 접합 시키는 것이었다. 첨형 아치는 이런 발상에서 나왔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건축물의 요구에 따라 평평하게 만들 수도 있고 더 뾰족하게 만들어 높이를 마음대로 조정 할 수 있다.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문제는 궁륭을 만드는 무거운 동들은 아래쪽으로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를 당긴 활처럼 양 옆으로도 압력을 주게 된다. 이 점에서도 첨형 아치가 둥근 아치의 개량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둥을 유기하기 위해서는 아주 강한 버팀목이 필요했다. 궁륭 천장을 가진 측랑 부분에서는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 밖에 부벽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높은 신랑의 경우에는 측랑의 지분을 가로질러 외부에서 지탱해주어야 했다. 그렇게 할 것인가? 이 경우에는 측랑의 지분을 가로질러 외부에서 지탱해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건축가들은 고딕궁륭을 뼈대를 완성시켜주는 공중 부벽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딕식 교회 건물으 마치 자전거 바퀴가 거미줄 같은 살에의해서 그 형태를 유지하듯, 가냘픈 돌 구조 사이에 걸려서 그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 바퀴나 고딕 건물의 경우나 다 같이 전체의 견고함을 유지하며 그 구조에 필요한 자재를 점점 줄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각 부분에 무게를 균등하게 배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회들은 단지 공학 기술상의 업적만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고딕 건축가들은 우리들이 그들의 설계의 대담함을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배려했다. 우리는 도리아 식 신전을 보고 수평적인 지붕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열주들의 기능을 감지한다. 그리고 고딕 성당의 내부에 들어가서 보면 아찔한 절도로 높은 궁륭형 천장을 지탱시켜주는 서로 밀고 당기는 복잡한 힘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는 빈 벽이나 육중한 기둥 같은 것은 없다, 내부 전체는 가느다란 기둥과 늑재로 짜여진 것 같이 보인다. 그 망이 천장을 덮고 주랑의 벽을 타고 내려와 가느다란 돌 가지들을 묶어놓은 것 같이 한다 모여 합쳐진다. 창문들 조차도 트레이서리라고 알려진 엮어짜여진 선으로 덮여 있다.

12세기말과 13세기초 대성당들은 주교들 자신의 교회로서, 대부분이 너무나 대담하고 장대한 규모로 구상되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처음에 계획한 대로 정확하게 완성되는 경우는 매우 들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계획이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광대한 내부로 들어가보면 그 규모가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사소한 것들은 모두 왜소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육중하고 엄격한 건물들만을 보아온 사람들이 이와 같은 건물에 들어와서 받았을 인상을 우리로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과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은 아마도 그 힘과 권세에 있어서 전투적인 교회라는 인상을 주었을 테지만 이 새로운 고딕 성당들은 신자들에게 전혀 다른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다. 신자들은 설교와 찬송가를 통해서 진주로 만든 문과 값진 보석, 순금과 투명한 유리로 된 천상의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환성의 광경이 하늘로부터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이모든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데 넋을 잃은 신자들은 물질 세계를 초월한 별세계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건물들 중 가장 완벽한 것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면을 꼽을 수 있다. 현관과 창문의 배렬은 매우 명료하고도 힘이 안들어 보이며, 회랑의 트레이서리 장식도 아주 날씬하고 우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돌더미의 무게를 잊게 되며, 건물 전체가 신기루처럼 눈 앞에 떠오는 것 같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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