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전쟁과 헬레니즘

러블리 리리 2024. 6. 10. 18:00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그리스의 미의식은 ;헬레니즘'시대를 맞이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도시국가들이 극심한 혼란을 거치면서 그리스의 주도권은 북쪽의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이동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 대제국은 불열했지만 동방 원정을 계기로 그리스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처럼 그리스 문화권이 순식간에 확대되면서 그리스 고유의 가치관을 반영한 작품 외에도 다양한 정서를 표현한 예술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지배한 오리엔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함으로 미술양식도 변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가 추구하던 사상이 아닌 개인정인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성을 강조한 사실주의로 변하면서 신이 아닌 군주나 특정 인물을 작품에 표현한 사실성 강한 묘사로 발전한 것이다.(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

 

조강상도 예술품으로 인정받아 헬레니즘 시대에는 관능적인 조각성이나 감각에 호소하는 미술품이 탄생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본다면 현대인들이 왜 고전시대의 조각상 보다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헬레니즘은 기원전 323년에서 기원전 30년까지이며 이때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으로 대제국을 이룩한 시기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고대 이집트에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멸망까지 약 300년간을 일컫는다. 기원전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여왕이 그 유명한 '클로오파 트라'다.

기원전 146년부터 그리스를 지배한 로마 제국은 건축, 예술 등 그리스 문명을 계승했고, 예술가들도 로마로 이주하여 그리스 미술을 복제했다. 그래서 청동으로 만든 그리스의 원적은 거의 없지만 로마에서 대리석으로 복제한 그리스의 예술품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애초에 로마인은 미술작품을 사치품으로 여겼으며 실용을 중시하고 소박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런데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그리스를 통치하면서부터 수많은 그리스 미술품이 전리품으로 로마에 들어왔고, 그리스 미술가들도 로마로 거쳐를 옮김으로써 앞선 그리스 문화가 로마를 지배하게 되었다. 

 

아르카익시대(기원전 600~기원전 480년) : 엄격한 예술

고전시대(기원전 480년~기원전 323년) :쾌락적 예술 선호하고 동방원정 결과 그리스 문화권이 확대되어 미술 양식 변모

헬리니즘시대(기원전 323~기원전 30년) :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통일, 로마가 그리스 문화 계승하여 복제품이 만들어짐, 고데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멸망시킨 로마는 이집트를 지배한다.

 

로마인의 신전도 로마 고유의 신전 건축에 그리스 양식을 곁들이며 발전했다. 그리스인 조각가로 로마 신전에 바치는 신창을 제작하기도 하여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로마가 그리스에 정복당한 셈이다. 로마인이라면 당연히 라틴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로마 제국 점령지에서 사용하는 지배계층의 공용어는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였다는 사실도 로마와 그리스의 관계가 설명된다.

 

그리스 문명을 계승한 로마인은 그리스 신까지 받아들여 로마 고유의 신과 접목하였다. 더욱이 문화 후진국인 로마의 상류층 사람들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여 주거 공간도 그리스풍으로 꾸몄다. 기원전 2세기 이후 로마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지금도 서양미술사에서 본보기로 보이는 고대 그리스 고전 시대의 원작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원작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걸작은 복제가 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에트루리아

 

신화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건국되었는데, 기원전 509년에 공화정을 수립한 뒤 영토를 넓혀나가다가 기원전 270년경에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했다. 또한 기원전 146년 그리스와 카르타고, 기원전 30년에는 이집트까지 로마의 속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제국으로 발전하기 이전 이탈리아 중부에 에트루리아 문화가 융성했다.

지금의 토스카나 지방에 세워진 에트루리아는 결속력이 약한 부족연합체로 주변 민족과는 다른 풍속, 생활양식을 갖추고 있다. (사후세계를 믿었던 에트루리아인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생활을 사후에도 하기 위한 영원의 집인 분묘를 세웠다. 네크로 폴리스:죽은 자의 도시 / 훗날 에트루리아의 도시를 정복하더라도 묘지는 파괴하지  않았음)

 

에트루리아 문화 에트루리아 신화(Etruscan mythology)는 고대 에트루리아인의 신화와 전설의 총체를 가리킨다. 에트루리아인은로마인 보다 앞서 이탈리아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민족으로, 이들이 세운 나라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현재의 토스카나주, 라치오주, 움브리아주에 해당하는 중부 이탈리아의 거의 전역을 지배한 왕국이다

 

로마는 에트루리아 왕의 지배를 받는 작은 도시국가였으나 국력을 키워 기원전 509년 공화정을 수립했다. 기원전 474년 그리스와 해전에서 패배한 에트루리아는 이후 쇠퇴하여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기원전 1세기 초 로마로 흡수되었다.

에트루리아는 청동제 금속공예와 테라코타 기술이 발달되어 로마 미술의 또 다른 원천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수가 즉위하면서 황제의 독재권력이 강해졌다. 로마제정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마 미술의 특징으로 초상조각이 있는데 조상숭배 풍습이 있던 고대 로마에서 조각의 초상화를 만들어 집 안에 모셔두었기 때문에 본인의 모습을 본뜬 초상조각이 유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가 그리스 지배하여 그리스 미술이 이상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이행한 헬레니즘 시대였다는 점도 사실적인 개인의 초상조각이 발전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상조각은 밀랍으로 만든 두상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청동이나 대리석을 이용하였다. 그리스인은 전신을 선호했지만 로마는 두상이나 흉상이 인기 있었다.

로마 조각에서 나체상이 드문 이유는 알몸으로 운동경기를 치르는 풍습이 없다 하지만 신분은 높은 로마인은 신격화를 위하여 알몸을 드러낸 조각각을 만들기도 했다. 

 

로마 황제의 조각상과 주화에 새겨진 황제의 초상을 비교하면 저마다 인물이 특징을 잘 표현했는데 이러한 점은 로마조각이 사실성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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