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 교

러블리 리리 2024. 6. 10. 16:41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이 알몸인 이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했던 신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유일신과 달리 초인적이면서도 기쁨, 분노, 그리고 애증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개성이 풍부한 존재였다. 인간의 몸은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며 아름다운 인간의 유체가 신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곧 선함이라 여겨져 남자도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덕을 쌓는 일이고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수려한 외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다.

- 기원전 6세기말 이후 아테네에서 지혜의 여신이자 아테네 시의 수호신 아테나를 기리는 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미남선발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미남대회에 시니어 부문도 있었다)

또한 남성의 육체미를 높이 평가한 배경으로 그리스 남자에게 부여된 병역의 의무를 꼽을 수 있다.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비로소 선거권을 얻을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스파르타의 경우, 남자는 일곱 살이 되면 가족과 떨어져 군대에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몸을 단련하는 것은 그리스 남성의 으뜸가는 덕목이어서 우람한 육체를 서로 경쟁하듯 겨루게 되었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래스로 이는 넓은 어깨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시대 배결을 토대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성미를 추구하는 그리스 조각이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 미술의 역서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600년경부터 기원전 480년경까지 이어진 '고졸기'라고도 부르는 시기에 아르카익 양식이 탄생했다. -아르카익미술이란 그리스 초기의 미술을 일컫는다. 아르카익은 그리스어로 시원, 태고를 뜻하는 아르케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 말처럼 그리스 조각은 흔히 아는 사실적인 그리스조각의 모습과는 달랐다.

'아르카익 미술' 

'고식의' '더 낡은''태초의'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르카이오스에서 유래됐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네스크 미술 등에서 발전의 초기 단계에 이루는 생경하고 미숙한 표현양식을 기리 키기도 하나, 특히 기원전 8세 기기 말부터 기원전 480년경에 이르는 그리스 초기의 미술을 말한다. 이 시대의 양식은 건축과 회화보다는 소아시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조상, 즉 '쿠로스'라 불리는 남자조성과 '코레'라 통칭되는 여자 조상에서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아르카익 미술은 그리스 각지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파르테논 이전의 신전을 장식한 것으로 보이는 많은 박공군상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조각들은 기술적으로는 그리스 조각의 고전기 작품에는 미치지 못하나 꾸밈없고 맑은 정신성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원전 6세기말부터 그리스 조각은 보다 자유롭고 풍부한 인체의 변화를 지향하게 되어 형태상의 구속이 강한 아르카익 조각의 특성은 사라지게 된다. 미술사에 있어서 '아르카익'이란 표현은 일반적으로 성숙기 이전의 치졸하고 미숙한 시기의 양식을 말한다.

아르카익 시대 조각상의 특징은 고대 이집트 미술의 영향을 받은 똑바로 서 있는 직립자세를 들 수 있다. 다만 이집트 미술과 달리 아르카익 시대의 조각상은 지지대가 없는 독립상이다. 신전에 바치기 위해 제작된 소년 또는 청년을 의미하는 '쿠로스'와 소녀를 의미하는 코레'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코레조각상은 이집트풍의 묵직한 가발을 쓴 것 같은 머리 모양이 두드러지며, 의상으로 여성의 몸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옷을 입은 코레와 달리 쿠로스는 알몸을 드러내는 누드 인물상으로 한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싣고 다른 쪽 다리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균정 잡힌 비대칭의 구도를 나타내는 콘트라포스토 기법도 쿠로스 조각상에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대그리스 미술에서 나체조각상의 육체미 표현이 완성된 시기는 '고전시대'이다. 콘트라포스토 기법(균형 잡힌 비대칭 구도) 비교하더라도, 다소 부자연스러운 부동자세에 머물렀던 아르카익 시대와 달리 고전 시대에는 균형 잡힌 비대칭 구도를 살려서 생명력이 넘치는 인간의 몸을 표현했다. 고전시대의 초기인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조각상의 특징은 신 또는 운동선수가 갖추고 있을 법한 고귀한 정신인 '에토스'를 추구하는 엄숙하면서도 영웅적인 모습을 담은 조각상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엄격양식'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페르시아 전쟁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아테네가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아테네의 정치가인 페리클레스의 정치개혁으로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치가 꽃을 피우며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충돌한 그리수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 사회와 미술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억압된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동으로 미술의 취향은 쾌락을 추구했다. 정신적인 기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을 향락적인 취미와 기호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조각의 특징인 숭고하면서도 장엄한 엄격양식은 쇠퇴하고, 기원전 4세기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우미양식'이 유행했다. 프락시텔레스는 고전시대 후기의 우미양식을 확립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그의 대표작품 중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는 올림픽 우승자의 몸을 모델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성이 감도는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고전 시대 조각상의 표정이 다소 무덤덤하게 보이는 까닭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그리스인의 가치관이 작품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슬픔 등 찰나의 감정을 뜻하는 '파토스'를 억제한 표정이 미덕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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